회사를 이직한지 이제 2년이 갓 넘었습니다. 이직 후 1년 동안은 새로운 분야에 적응하랴 회사 분위기에 적응햐라 앞만 보고 달렸는데요, 2년 차부터는 조금 적응이 되서 뒤도 가끔 돌아보며(?!) 살고 있습니다. 이전 회사와 지금 회사의 가장 큰 차이점을 들자면 마음의 "여유"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군요. ^^

이전에 근무하던 S사에서는 최전방 부서에서 일했습니다. 플래시 메모리 관련 제품을 만드는 부서였는데, 스마트폰용 저장매체의 펌웨어를 만드는 것이 팀이 맡은 역할이었습니다. 스마트폰용 저장매체는 플래시 메모리를 기반으로 하는데요, S사는 플래시 메모리와 관련 제품을 꽉 잡고 있는 회사라... 제가 있던 부서는 꽤 바빴습니다. ^^;;; 세계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려면 더 높은 용량을 제품을 더 빨리, 그리고 싼 값에 출시해야 했기 때문이지요.

이런 연유로 개발도 빨리해야 했고 고객사에서 들어온 제품 불량 분석도 빨리해야 했습니다. 팀원들이 워낙 특출나서 펌웨어도 뚝딱 만들어내고 불량 분석도 몇시간 내에 끝났지만... 뭔가 위태로워보였습니다. 아니, 위태로웠습니다. 촉박한 개발 기간으로 인한 테스트 기간의 부재와 "실수"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었는데요. 내가 한 실수 때문에 제품 출시가 늦어지거나, 불량 원인 분석이 잘못되어 진짜 원인을 놓쳤을 때 이런 부분들이 즉시 "돈"으로 환산됐습니다. 그나마 행복한 케이스는 고객 출시 일정이 늦어져서 제품 가격을 조금 깎아주는 정도였지만, 판매한 제품 전체를 다시 배로 실어와서 펌웨어 수정 후 다시 보내야하는 재앙 수준의 일도 벌어졌습니다.

제가 S사에서 겪은 분위기는 다들 겉으로는 웃으며 즐겁게 일하는 듯 하지만, 실제로는 언제 터질 줄 모르는 폭탄을 안고 일을 하는 느낌이었습니다(물론 제가 좀 소심한 성격이라 더 그렇게 느낀 것일 수도 있어요 ^^;;;) 이때는 정말 회사가기 싫더라구요. ㅠㅠ 보통 퇴근할 때 펌웨어 테스트를 걸어놓는데 출시일이 다가올때는 걱정때문에 새벽에 몰래 출근해서 테스트 결과를 확인한 일도 일도 비일비재했습니다. 아침에 출근해서 발견한 버그가 심각한 문제라 출시일이 늦어질까봐 겁이났던 거죠. ㅠㅠ

그런데 저만 그런 것이 아니었더군요. 다들 코드를 만지는 게 부담이었던지 소스코드 저장소에 커밋을 꺼리는 웃지 못할 일도 발생하고, 업무 분장 시에 복잡하고 어려운 핵심 모듈을 맡지 않으려 서로 등 떠미는 일도 있었습니다. ^^;;; 물론 어찌어찌 굴러는 갔지만... 글쎄요, 온 힘을 다해 프로젝트에 힘을 쏟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더 나은 방법을 찾아야 하겠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모든 게 "마음에 여유"를 잃어버려서 그랬던 것 같아요. 시간이 없고 실수가 "돈"으로 바로 환산되니 그만큼 부담이었던 거죠.

프로그래머 그 다음 이야기를 읽다가 옛날 기억이 떠올랐는데... 직원들이 마음에 여유를 잃어버리는 일, 그것만큼 회사에 손해가 되는 일이 없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한자 남겨봅니다. 시간적인 여유는 그렇다치더라도 "마음에 여유"까지는 뺏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

http://image.yes24.com/goods/5354328/L

<프로그래머 그 다음 이야기 - 출처 yes24.com>

그럼 즐거운 주말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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